어릴 때는 어른들의 대화가 궁금하다. 주변에 앉아 노는 듯 하지만 귀는 그쪽을 향해 열려있다. 그렇게 듣게 된 얘기들 중에 수십년이 지나도 지금까지 기억 나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동네 내리막길에서 트럭의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아 아이를 치는 사고가 있었고 안됐다는 한탄의 대화들이 오고 갔다는 것. 가끔씩 브레이크 사고 뉴스를 접하게 되면 그 대화가 어김없이 떠오른다.
그리고 또 하나는 어느집 딸 누구누구가 과자때문에 결국 이사를 갔다는 얘기다. 군것질이 너무 심각해서 그 집 부모님은 동네 수퍼에 아이가 찾아오면 과자를 팔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었다는 것과 결국은 집 주변에 수퍼가 없는 동네로 이사를 갔다는 등의 얘기였다.
우리집엔 군것질용 간식들이 끊이지 않는 편이었다. 부모님이 맛동산, 땅콩강정, 빠다코코낫, 오징어땅콩 등의 과자를 즐겨 드셨고, 아빠도 퇴근 후 과자가 담긴 봉지를 들고 들어오시곤 했다. 하지만 난 그런 과자들을 썩 좋아하진 않았다. 딱딱하고 땅콩이 들어간 과자의 매력을 잘 모르던 아이였다.
수중에 돈이 생기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동네 가게에서 만화가 들어있는 껌이나 신호등 사탕, 작은 네모난 상자에 담긴 카라멜을 사먹곤 했다. 상자에 담긴 카라멜을 꺼내기 위해 끈을 잡아 당기고 돌려서 비닐을 벗기는 순간은 뭔가 경건한 의식같기도 했다.
세발 자전거에 앉아 껌 속에 들어있던 갱지로 된 만화책을 보고 또 들여다 보던 아이의 모습은 혼자 시간을 보내며 놀기 위해 무료하게 보낸 장면으로 남아있다.
이후로도 나는 쭈욱 입이 즐거워지는 간식들을 열심히 찾았다. 마가렛트가 처음 나왔을 때 전자렌지에 돌려 먹으면 맛있다는 광고를 보고 봉지째 전자렌지에 돌렸다가 전기가 튀어서 두려움에 휩싸였던 기억. 전자렌지에 불이 붙거나, 집에 불이 나거나, 부모님께 혼나거나. 큰일 났구나. 그렇게나 부드러운 과자가 나오다니 신세계였다. 만화에서 보던 것처럼 오븐에서 구워낸 자국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마가렛트는 빨강머리앤이 알록달록한 초콜렛을 다이애나와 나눠먹는 장면을 보며 느꼈던 행복감에 버금가는 기쁨을 느끼게 해 줬던 과자였다.
후레쉬베리 같은 케이크 종류의 과자제품들이 나오기 시작했을 때도 열심히 사다 먹었다. 칩이나 스낵류의 짭짤하고 딱딱한 과자나 크래커 종류보다는 부드럽고 느끼한 쿠키나 케이크류에 빠져있었다.
신상과자 광고를 보면 집앞 슈퍼로 달려갔던 나였고, 그곳에 없으면 좀 더 멀리 있는 큰 시장 안에 있는 대형 슈퍼로 찾으러갔던 나였다. 그렇게 과자에 열정적으로 빠져 있던 때가 있었다. 그것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그것들이 외로움을 달래주었다는 것에 나 자신이 공감하기 시작했던 순간, 과자 때문에 이사갔다는 그 아이가 떠올랐다.
스스로 밖에 나가 과자도 살 수 없도록 통제를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아이가 과자에 중독된 것 처럼 집착하게 된 이유가 있었을 텐데.
과자로 분명 어떤 결핍을 채우려고 했던 것일텐데.
